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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추기경님의 마지막 고백 "예수님께 가까이 가려면 자신을 비워내라"

 

타이완의 산궈스 추기경(바오로)은 2012년 8월 22타이완의 산궈스 추기경(바오로)께서 2012년 8월 22일 선종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은 당신의 질병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크게 울리는 묵상을 드려주십니다. 추기경님께서 직접 쓴 편지는 8월 19일 자 타이베이대교구 주보에 실렸습니다. 다음은 산 추기경의 편지 전문입니다.


예수회에 거의 70년 동안 있으면서, 이냐시오 영신수련은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영적훈련, 인격적 언행, 책임, 명예, 지식의 탐구, 일에 대한 진지함과 효율의 중요성은 “ad majorem Dei gloriam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라는 이냐시오의 원칙에 따르면,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한 도구이자 징검다리였다.

하지만 우리의 인간성은 약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진정한 목표를 잊고, 평판과 권위를 높이고 사람들의 존경을 얻는 데 집착하게 된다. 이때에는 이런 도구들이 사람들을 도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와 한 몸이 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매일기도와 영신수련, 미사를 통해 나는 하느님의 친밀함을 느낀다. 하지만 창으로 가슴을 찔리고 “자신을 비우시고(필리피서 2,7)” 한 조각의 천으로도 가리지 못하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여전히 거리감을 느꼈다. 이것에 대해 여러 번 묵상했지만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최근 몇 달 동안, 나는 내 오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나는 병원에서 기도하고 묵상할 시간을 가졌다. 내가 기도할 때, 죽어가는 예수의 모습이 종종 나타났다. 동시에 “자신을 비워라, 그러면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해 자신을 비운 예수와 가깝게 지낼 수 있게 골고타 언덕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음성도 들려왔다.

이 환영은 나를 깨우쳤다. 나는 내가 입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직자의 장백의, 주교 반지와 주교관, 추기경의 진홍색 수단, 이런 것들은 과다로 포장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들은 나의 원래 자신을 잃게 했다.

하지만 이런 옷들은 내 일상의 하나가 됐고, 이런 옷들을 벗어던지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이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할 수 있으시다. 하느님은 나에게 몇 가지 속임수를 쓰셨고 몇몇 경우 나를 당황하게 하셨지만 궁극적으로는 내 문제점을 풀어주셨다.

지난 6월 말, 가슴에 찬 물을 빼기 위해 입원했다. 의사는 내 허파에 고인 물을 빼기 위해 이뇨제를 처방했고, 나는 이 사실을 몰랐다. 미사를 드리는 중에 약효가 나타났다. 독서를 할 때쯤에, 화장실에 가야 했다. 화장실로 가는 동안 오줌을 지려 심하게 젖었고 마루에 자국을 남겼다.

사제품을 받고 57년 동안, 미사를 드릴 때 이런 적은 없었다. 나는 내 권위를 잃었다. 수녀와 의사, 간호사들 앞에서 숨을 곳을 찾지 못했고, 이것은 하느님께서 나의 허영심을 고치기 위해 어떻게 시작했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얼마 뒤, 타이베이에서 나는 이틀 동안 대변을 보지 못했고 의사는 완화제를 줬다. 약효는 한밤중에 나타났다. 나를 돌보던 남자 간호사를 깨워 샤워실로 데려다 달라 부탁했다. 샤워장으로 다 가기 전에, 내 속이 비워졌다. 대변이 나와 바닥에 떨어졌고, 이 간호사가 내 똥을 밟았다. 그는 행복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신고 있던 슬리퍼와 바닥을 닦으며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내 똥 묻은 파자마를 벗기고 나를 화장실 변기에 앉혀 내 다리에 묻은 똥을 닦으며 어른이 아이를 꾸짖는 것처럼 나를 꾸짖었다.

그는 “두세 발짝만 더 가면 변기였는데, 그것도 참지 못했느냐? 이것 때문에 내가 고생했다. 다음에는 더 일찍 말해 달라”고 당부했다.

나는 내가 한 살짜리 어린애처럼 느껴졌다. 그의 말은 날카로운 칼로 나에게 다가와 내가 90년 동안 갖고 있던 모든 존경과 명예, 직함, 직위, 권위, 위엄을 난도질했다. 나를 다 씻기고 나서 그는 나를 침대에 눕히고 바로 잠이 들었다.

나도 잠에 들었지만 곧 깨어났고 아주 편하게 느껴졌다. “자신을 비운” 예수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그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고 주님께 더 가까이 가자고 초대했다.

내 몸이 아주 작은 캥거루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한 번 뛰어 오르니 성스러운 산의 십자가 아래까지 올랐다. 다시 뛰어올랐을 때 나는 예수의 발까지 닿았다. 위를 쳐다보니 예수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열어 나보고 뛰어올라 그 안에 들어오라고 했다. 작은 캥거루는 다시 한 번 뛰어올라 예수의 심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은 어머니의 자궁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여기가 예수의 무한한 사랑으로 둘러싸인 가장 안전하고 따듯한 장소”라고 느꼈다.

다음 날 아침 간호사는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은 것처럼 나를 정중하게 다뤘다. 나는 주님께 내 영성적 질병을 낫게 해 준 것에 대해 감사했고, 이로 인해 나는 아이처럼 생기를 되찾고 단순해지며 겸손해졌다. 이 순간은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오 18,3)는 말씀을 제대로 이해했다.

세 번째 당황했던 순간은 2주 전이었다. 나는 그때 막 예수회의 병원으로 옮겼다. 발에 부종이 생겨 의사들은 강력한 이뇨제를 처방해주면서 또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방사선치료를 하러 가던 도중에 약효가 나타났다. 의료진과 기술진은 내 바지가 완전히 젖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마지막 남은 한 조각 위엄도 잃었다.

이 경험들로 두 가지 영성적 측면을 깨달았다.

첫째는 만일 주님께 가까이 가기 바란다면, 자신을 비우는 데 있어 주님의 도움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사랑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장난을 치실 때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의 고질병을 고칠 수 있다. 영성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치워질 것이다.

이런 당황스러움이 죽을병에 걸려 고생하는 이 90대 노인에게 원기를 회복시켜줬다. 며칠 만에, 이 당황스러움은 어릴 적 순진함을 다시 가져다줬고 오랫동안 쌓여왔던 도움되지 않는 습관을 없애줬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태오 19,26)

산궈스 바오로

2012년 7월 31일,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축일에

기사 원문: Emptying myself to get close to Jesus, by Cardinal Paul Shan Kuo-hsi

By 가톨릭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