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의 시청각장애 사제, 키릴 악셀로드 訪韓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청각장애를 안고 태어난 유대인 소년은 랍비를 꿈꿨다. 그러나 장애인은 랍비가 될 수 없다는 율법에 가로막혔다. 가톨릭으로 개종하자 유대인 사회가 들고 일어났다. 사제의 꿈을 밝히자, 이번엔 신부들이 말렸다. 고난 속에 사제가 됐지만, 이번엔 시각장애가 찾아왔다.
세계에 단 한 명뿐인 시청각 중복장애 사제 키릴 악셀로드(Cyril Axelrod·71) 신부가 방한, 21일 오후 서울 이촌동 한강성당에서 강연했다. 청각장애 사제는 세계에 단 15명이고, 시청각 중복장애 사제는 악셀로드 신부가 유일하다.
세계 유일의 시청각 중복 장애 사제인 키릴 악셀로드 신부(맨 오른쪽). 21일 강연에서 악셀로드 신부의 광둥어 수화를 자원봉사자 시몬 찬(홍콩인₩가운데)씨가 광둥 말로 통역하고, 이를 최베네딕타 수녀(맨 왼쪽)가 우리말로 다시 통역했다. 사진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악셀로드 신부에게 시몬 찬씨가 청중의 반응을 촉각으로 전하는 모습. /이태훈 기자 자서전 '키릴 악셀로드 신부'(카톨릭출판사) 출간을 기념해 열린 이날 강연 제목은 "이 세상에 할 일이 있다, 나도!". 촉각 수화로, 통역으로 그의 말은 여러 단계를 거쳐 청중에게 전달했지만, 800여 청중은 보고 듣지 못하는 신부에게 감동이 전해지도록 의자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갈채를 보냈다.
"랍비의 꿈이 꺾여 좌절했던 스무 살 무렵, 환한 빛과 함께 '어서, 나를 따르라!'는 음성을 들었지요. '예수'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들어 제쳐뒀던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은 그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하자 "유대인 사회에서 널 죽일지도 모른다"며 염려했다. 유대인들의 항의가 힘겨웠던 주교들도 "네 신앙으로 돌아가라"고 말렸다. 어렵게 입학한 신학교에서는 동료 신학생들조차 그를 외면했다. "그때 한 주교님이 말씀하셨어요. '신학교 기간은 짧지만 사제로 살 기간은 너의 일생이다. 지금 쓰러져선 안 된다'고." 1970년 사제 서품을 받을 땐 "부모를 욕되게 했다"며 외면하던 어머니가 참석했다. "유대인 아들을 신부로 봉헌하기 원하느냐" 주교의 질문에 어머니는 담담히 답했다. "아들이 신부가 되길 원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사제가 된 악셀로드 신부는 남아공에서 흑인 청각장애아들을 돌보며 그 부모들을 위한 수화 과정도 운영했다.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며 선교하던 중, 신부는 '망막 색소 변성증'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내게 맡긴 백성을 돌보시려 청각 장애를 이용하셨던 하느님이 이제는 내 시각 장애를 들어 쓰시려는 것"이라 믿었다.
필리핀, 홍콩, 마카오 등에서 청각 장애인 사목을 이어갔다. 2000년 즈음엔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시청각 장애인 사목을 계속한다. 전 세계를 돌며 "종교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나를 보며 용기와 지혜를 얻기를" 바라며 강연한다. 후천성 시각장애인 개그맨 이동우씨는 "신부님은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이 단지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신다"고 했다.
신부는 "예수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만났을 때 피하지 않고, 그들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았다"고 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장애를 가진 형제자매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세요. 이 소식을 전하러 저는 한국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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