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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회소개/활동

가톨릭 성령쇄신

 

 

성령쇄신운동은 성서와 복음 정신에 바탕을 둔 영성운동으로서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교회 안에 생명력을 전달하고자 하는 교회와 신앙의 쇄신운동으로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 영성 
성서와 교회의 가르침에 기초를 두는 복음정신을 원동력으로 합니다.

• 성서의 실천과 공동체 운동
성서에 맛들이고 성서의 체험을 구체화하며 초대 교회 공동체의 정신과 그 생활을 본받고자 합니다.

• 하느님 체험과 교회와 은사의 쇄신, 그리고 복음화 운동
주님의 현존을 체험함으로써 신앙을 삶으로 실천합니다.

• 교회와 신앙의 쇄신 운동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교회 공동체에 생기를 불어넣고, 성사와 전례, 기도 생활의 기쁨을 누리고자 합니다.

• 은사 쇄신과 복음화
교회와 그리스도인에 내재하는 성령의 은사를 새롭게 함으로써 적극적인 복음 선포와 선교를 지향합니다.

 

개요

가톨릭 성령쇄신운동은 일반적으로 1900년 12월 개신교의 오순절 교파 출현보다 훨씬 늦은 1960년대 후반, 제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미국 듀케인 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의 기도모임에서 출발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가톨릭 성령쇄신 운동의 연대기를 살펴보면 이미 19세기 말, 오늘날의 성령쇄신운동의 기초가 된 교회 안에서의 움직임과 이를 증명하는 교황 회칙과 문헌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성령쇄신운동 또한 하느님의 참으로 오묘한 섭리로서 우리 나라에 가톨릭 신앙이 전파된 것처럼 평신도로부터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 가톨릭 성령쇄신운동의 연대기

• 1895년 이탈리아 성령봉헌 수녀회(Inst. Oblantanum Spiritus Sancti)를 창설한 복녀(福女) 구에라(Helena Guerra 1835-1914)수녀는 교회가 사도행전에 언급된 '기도하는 다락방'으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성령에 대한 신심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이를 간청하는 서한 12통을 5년에 걸쳐 교황 레오 13세에게 보냄. 구에라 수녀의 편지를 받은 교황은 전 교회가 성령 강림 대축일에 앞서 성령께 바치는 9일 기도를 바치라는 내용의 공적 서한<섭리된 어머니의 사랑>을 보냄.
• 1897년 5월 7일 성령에 관한 회칙<디비눔 일룻 무누스>(Divinum illud munus)를 반포. 전 세계 모든 본당에서 성령강림 대축일을 준비하는 9일 기도(성령께 드리는 구일기도)를 바치도록 거듭 촉구함.
• 1900년 10월 15일 구에라 수녀는 교황 레오 13세에게 새로운 세기의 첫 해를 전 교회의 이름으로 "오소서, 성령님"(Veni. Spiritus, 성령송가)을 노래하면서 시작 할 것을 제안.
• 1900년 12월 31일 미국 캔자스 州 의 토페카에서 성서 공부를 하던 개신교의 한 모임 송년의 밤에 성령의 은사를 체험한 뒤 이를 전함으로써 오순절 교회(Pentecostalism)라는 새로운 교파가 생겨남.
• 1957년 성령쇄신 운동을 거부하던 개신교 교파들, 오순절 교파의 성장을 보고 이를 인정하기 시작함.
• 1959년 4월 26일 ‘성령의 사도’라 불리던 구에라 수녀, 교황 요한 23세(1958-1963)에 의하여 시복됨. 교황은 구에라 수녀의 고향에서 온 순례자들에게 '우리는 성령강림과 같이 성령께서 계속적으로 일해주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피력함. 또한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시작 전과 공의회 동안 "오, 주님! 새로운 성령강림과도 같이 당신의 놀라우신 일들을 오늘날 새롭게 하소서" 라고 지속적으로 기도하기를 모든 신자들에게 당부함.
* 그 결과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의 성령쇄신 운동이 시작되었고, 공의회 문헌 여러 군데에서도 성령에 관하여 언급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오늘날의 성령쇄신 운동을 예견한 것과 같은 문구도 들어있다.(교의 12항)
• 1962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 -1965)
• 1966년 미국 펜실베니아 州 피츠버그에서 '성령회'가 운영하는 듀케인(Douquesne) 대학교의 몇몇 젊은이들이 성령 강림에 대한 동경을 품고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함. 이들 중 일부는 1년 동안 매일 "오소서 성령님"으로 시작되는 성령송가를 바침.
• 1967년 2월 듀케인 대학 젊은이 기도모임의 주말 피정(피정지도 : 힐레이 신부)에서 예수님의 강한 현존감을 느끼며 이상한 언어의 기도(방언)를 체험함. (세미나 형식의 피정 / 주제 : ‘성령’ / 사도행전 1-4장에 대한 토론과 기도) 피정 참가자 David Mangan의 첫 은사 체험 후 다른 학생들도 성체조배 중 같은 은사 체험함. 피정 후 이들은 다른 학생들과 나누고 함께 기도하면서 은사체험을 하게 되고 이것이 각 대학과 본당, 수도회로 급속히 전파되며 성령쇄신운동으로 발전.
• 1968년(한국) 기도 중에 성령의 은혜로 여러 가지 병을 치유 받은 평신도 김재원이 기도 모임을 시작함. * 당시 한국 천주교에는 성령쇄신운동이 도입되기 전이었음.
• 1971년 5월말 13명의 외국인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성령강림 대축일을 맞이하여 성령체험을 위한 주말 피정을 가짐.
* 당시 이들의 피정을 도와준 사람은 한국 가톨릭 신자들에게 성령운동을 전파하기 위해 스웨덴에서 온 크누타스((Mirian Knutas)와 성공회의 토리(Archer Torrey) 신부였다. 피정 도중, 메리놀 외방 전교회의 제럴드 파렐(Gerald Farrel) 신부가 합류였는데 파렐 신부는 휴가차 미국에 갔다가 미국 가톨릭 성령쇄신운동에 참석하고 같은 해 귀국한 경력이 있었다. 따라서 당시의 성령쇄신운동은 초교파적 성격을 띠며 미국 가톨릭 성령쇄신운동과 쉽게 연결될 수 있었다. 이후 파렐 신부는 두 차례에 걸쳐 미 8군에서 미국 성령쇄신 공동체에서 개발한 성령세미나를 개최하였다.
• 1973 6월 노틀담 대학교에서 개최된 세계 대회 열림. 이 대회에는 35개국에서 온 약 600명의 사제들과 수 십명의 주교들을 포함하여 22,000여명이 참석함.
* 듀케인 대학의 주말 피정 이후 불과 6년 만에 성령쇄신운동이 전 세게의 가톨릭 교회로 확산되었다.
• 1973년 가을 서울대교구의 신학교에서 제럴드 파렐(Gerald Farrel) 신부 지도로 10여명에게 성령 세미나 실시.
• 1973년 12월 5일 메리놀 외방 전교회의 제럴드 파렐(Gerald Farrel) 신부, 가톨릭 성신운동 협의회 (현. 한국 가톨릭 성령쇄신 봉사자 협의회) 창설.
• 1974년 1월 15일 한국 평신도들을 위한 첫 성령 세미나를 실시.
* 이후 성령쇄신운동은 전국적으로 전파되어 현재까지 수 십만 명이 성령 세미나를 받았고 성직자. 수도자 수천명이 세미나를 수료하였으며 지금도 매년 3만명 내외의 사람들이 성령 세미나를 받고 있다. 현재 한국성령쇄신 운동의 조직은 주교 회의 인준을 받은 ‘한국 가톨릭 성령쇄신봉사회’ 가 있다. 그리고 몇몇 교구에서는 성령쇄신봉사회 산하에서 지구 봉사회, 특수 봉사회, 청년 봉사회 등을 두고 있고 각 본당에는 본당기도회가 있다